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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공명: 음악가의 소리에 대한 명상

A gouache painting in soft pastel tones shows a tranquil, dreamlike studio scene. A figure, seen from the side, sits calmly at a keyboard surrounded by abstract shapes and gently glowing equipment. The background blends into diffused waves of color—lavender, muted blue, pale peach—suggesting a quiet, introspective mood. Subtle brush textures evoke a handmade, meditative atmosphere.

스튜디오에 앉아 부드러운 램프 불빛 아래 있다. 발치에는 케이블이 감겨 있고, 노브들은 은은한 빛을 띠며 반짝인다. 내 손은 건반과 패드 위에 떠 있고, 펼쳐진 악보도, 메트로놈의 똑딱거림도 없다. 오직 이 순간만이 나를 이끈다. 나는 단 하나의 키를 누른다. 음이 살아나 잠시 머무른 뒤 사라진다. 어택과 감쇠 사이의 틈새, 그곳에선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철학이 아니다. 소리와 존재가 직접 만나는 순간이다. 나는 의미를 찾지 않고, 들은 것을 이름 짓지 않는다. 진동을 감지하고, 그것이 뼈와 살에 전해지는 것을 느낀다. 필터 없이 소리가 내 안을 통과하도록 허용한다. 개념이 생기기 전 그 짧은 시간, 소리와 청자는 하나가 된다.

경청은 ‘행동’이 아니라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일이다. 내면의 비평가, 과거 녹음의 저장고, 이상적인 연주에 대한 설계도를 치워야 한다. 테크닉과 훈련은 존재할 여지를 마련할 뿐,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 손이 습관적으로 움직일 때 소리는 텅 빈 통로를 스쳐 갈 뿐이다. 이를 깨기 위해 나는 예고 없이 다이내믹을 바꾸고, 세션 중간에 마이크 위치를 조정하며, 패드 감도를 이따금씩 달리한다. 매 번의 개입이 루틴을 풀어내고 주의를 새롭게 한다.

드럼 패드를 한 번 두드린다. 나무와 금속, 그리고 내 몸을 관통해 전달되는 단 하나의 비트가 공명한다. 그 잔향이 근육과 골수에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반복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대신 소리의 미감—감쇠하는 음색, 침묵 속에 깃든 기억—을 경청한다. 그 침묵의 메아리는 비트를 지우지 않고, 다음 소리와 이어 붙인다.

침묵은 결핍이 아니다. 소리가 피어나고 돌아갈 토양이다. 두 음 사이의 정적은 첫 음의 기억과 다음 음에 대한 기대를 품는다. 그것은 공허가 아니라 관문이다. 그 사이사이, 에어컨의 낮은 흥얼거림, 멀리서 들려오는 차 소리, 방의 고유한 울림이 음악의 일부로 들어온다. 나는 우발적인 소리들을 의도적 제스처와 나란히 허용한다. 그것들은 세상의 목소리를 증언한다.

멜로디가 떠오르면, 나는 구조를 강요하지 않고 그 흐름을 따라간다. 어떤 구절이 반복되면, 그 안에 변주를 손님처럼 초대한다. 악기가 화성의 우회로를 제시할 때도 있고, 미묘한 리듬의 비틀림을 암시할 때도 있다. 나는 그 초대에 응하며, 매 변주가 음장(音場)을 재편성하고 새로운 경청을 요구함을 받아들인다.

완벽한 기교는 오히려 즉시성을 해칠 수 있다. 탁월한 테크닉은 기대라는 그물에 나를 가두어 버린다. 열린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기술적 모드와 직관적 모드 사이를 오간다. 어느 순간엔 미터를 주시하며 이퀄라이저를 조정하고 게인을 맞추고, 다음 순간엔 눈을 감고 호흡을 느끼며 진동에 귀를 기울인다. 통제는 명료함을, 내맡김은 놀라움을 불러일으킨다.

녹음은 보존과 연주의 긴장 관계를 품고 있다. 나는 레코드 버튼을 눌러 방과 악기의 대화를 기록한 뒤, 다시 녹음을 멈추고 문서화 없이 계속 연주한다. 녹음은 관객 없는 무대에 나를 유혹하지만, 나는 그것을 거부한다. 존재감이 더욱 깊어질 때만 녹음하고, 기교가 빛날 때는 녹음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테이크는 기록되지 않은 채 사라짐으로써, 저장 불가능한 순간의 증언으로 남는다. 그 소멸이 나를 비교에서 자유롭게 해 준다.

그 후 헤드폰을 끼고 재생할 때, 나는 음질을 판단하지 않고 주의의 흔적을 찾는다. 짧은 정적이 어떻게 음악적 제스처가 되는지, 하나의 패드 타격이 다른 타격과 어떻게 공명하는지, 방이 잔향에 어떤 색을 입히는지 관찰한다. 이 재생이 원래의 만남을 측정하기보다 되살리도록 허용한다.

스튜디오 밖에서도 경청은 계속되는 수련이다. 오후 산책길에 아스팔트 위 발소리, 나뭇잎 스치는 바람 소리, 피부 아래에서 울리는 심장 박동에 귀 기울인다. 이 리듬들은 스튜디오 작업과 연결되어, 삶의 템포가 음악의 템포가 된다. 나는 내 의지를 강요하지 않고, 상황에 맞춰 흐름을 배우게 된다.

대화 속에서도 경청이 교류를 형성한다. 친구의 시선을 포착하고, 억양에 주의를 기울이며, 침묵을 의미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텅 빈 순간을 채우려는 충동을 억누르고, 말과 무언의 조화를 통해 대화를 엮어 간다. 존재가 추측을 대신하며, 대화는 리허설이 아닌 즉흥적 합창이 된다.

스튜디오로 돌아오면, 그 상호작용이 다시 떠오른다. 나는 단순한 화음을 연주하고, 그것이 기분에 어떻게 스며드는지 녹음한다. 이어서 서스테인을 조정해 그 기분을 존중하고, 방의 음향이 화음 소멸에 어떤 색을 더하는지 관찰하며 그 색으로부터 배운다.

마이크는 존재를 매개한다. 나는 센티미터 단위로 위치를 옮기며, 오버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경청한다. 완벽이 아닌 호기심을 좇아, 약간 비스듬히 세운 마이크가 숨은 뉘앙스를 드러내도록 허용한다. 듣고, 옮기고, 다시 듣는다. 매 조정이 새로운 층위를 열어 준다.

연주자와 악기는 상호 순환 고리에 들어선다. 소리는 내 몸을 통과하고, 호흡과 의도가 그것을 빚어 내며, 잔향은 다시 되돌아온다. 행위자와 대상 사이의 위계는 사라지고, 존재는 과정으로 펼쳐진다.

나는 연주를 멈추고, 케이블과 페이더, 램프를 살핀다. 존재가 연주를 넘어 지속된다는 깨달음이 밀려온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아도,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아도, 존재는 여전히 공명한다. 침묵은 가능성으로 맥동하며, 그 맥박이 작곡과 녹음, 공연과 삶을 인도한다. 나는 더 이상 결과를 좇지 않고, 해설도 분석도 기대도 없이 매 순간의 구체성에 귀 기울인다.

시간이 흐르며, 특정 음이 의식의 변화를 동반함을 알아차렸다. C와 G의 순정 오도가 신경계를 진정시키면 심박은 느려지고 근육은 이완된다. 반면 단이도(반음)는 몸에 미묘한 긴장을 일으켜 두개골 밑에서 전율을 느끼게 하며, 집중력을 날카롭게 하거나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즉흥에서 나는 이 음정을 시험하며 단이도의 떨림이 호흡을 어떻게 깊게 하는지 관찰하고, 다시 순정 오도로 풀어 주었을 때 어깨가 어떻게 내려앉는지 느낀다. 이 음정 사이에 놓인 침묵은 공기가 아니라 변형의 매개체다. 그 고요한 문턱에 기대의 미세 진동과 잔향이 깃들며, 그 속에서 명상적 주의가 응결되어 마음을 수용의 상태로 이끈다.

나의 방식은 경청 자체를 수행으로 삼는 전통에 뿌리를 둔다. 일본에서는 ‘마(間)’라는 개념으로 매듭 사이의 빈틈을 중시해 침묵을 음악의 필수 요소로 여긴다. 석죽笛奏者들은 호흡 조절과 마음 챙김을 기르며, 들숨과 날숨조차 음악의 일부로 듣는다. 나는 솔로 플루트 녹음에 몰입해 가장 미세한 호흡 소리조차 침묵 속에서 또렷이 떠오르는 것을 체험한다. 티베트 싱잉볼 연주자들은 쿠션 위에 그릇을 올린 뒤 타격 후 말렛을 떼어 음과 침묵이 함께 꽃피도록 한다. 석조 사원에서의 연주 녹음은 긴 잔향이 살아 있는 공간으로 스며들어 관객과 어우러지는 방식을 보여 준다. 시애틀 미니멀리스트에서 고대 雅楽(ががく) 앙상블까지, 나는 소리가 결코 고립되지 않고, 존재와 공허에 대한 문화적 상념과 함께 공명한다는 것을 배운다.

공명 공간이 지각을 빚어 낸다. 나무 마루는 중역을 강조해 피아노 화음에 따스함을 더하고, 콘크리트 벽은 저역을 부각시켜 킥 드럼을 가슴에 울리는 저주파 충격으로 바꾼다. 무향실은 반대로 가장 작은 소리조차 표면 위에 드러나게 한다. 나는 이 효과를 다루기 위해 이동식 패널과 금속판, 천을 배치하고, 스위프 테스트를 녹음하며 잔향 시간의 작은 변화를 초 단위로 기록한다. 부드러운 소재는 고역을 흡수해 친밀감을 만들고, 반사면은 배음을 연장해 광활함을 느끼게 한다. 소재 선택은 음색뿐 아니라 마음 상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무는 안락함을, 돌은 엄숙함을, 가벼운 천은 친근함과 통透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음향 환경을 기획함으로써 나는 신체의 공명을 다듬고, 명상적 몰입을 돕는다.

핵심에는 무위(無爲)의 원리가 자리한다. 나는 음악을 강요하지 않고, 저절로 드러나게 둔다. 실천에서는 어떤 제스처 앞에도 고요히 앉아 충동을 기다린다. 충동이 오지 않으면 가만히 있을 뿐이다. 패드도 건반도 신호도 없이 침묵 속에 앉아 호흡과 공간의 맥박을 느낀다. 한동안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침묵의 훈련이 주의를 더욱 예리하게 다듬어 준다. 악기로 돌아갈 때, 나는 낡은 아이디어 대신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한다.

소리·전통·공간·침묵의 균형을 통해, 나는 음악이 완성물이 아니라 경청의 거울임을 깨달았다. 각 세션은 존재에 대한 수행이며, 각 소리와 각 침묵, 각 미세 조정은 더 깊은 자각으로의 초대장이다. 나는 다시 한 번 키를 누른다. 음이 피어오른다. 나는 귀 기울인다. 그리고 놓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