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의 흔적, 집중이라는 방법, 그리고 침묵이 반대 개념이 아닌 이유에 대해 토마스 알렉산더 콜베와 나눈 대화
토마스 알렉산더 콜베는 일본 나고야에 거점을 두고, 두 번째 거처로 베를린을 오가며 활동하는 프로듀서, 음악가, 연구자입니다. 그는 시끄럽지 않아도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음악의 영역을 탐구합니다. 이번에는 소리의 자국, 의도적인 절제, 그리고 온전히 귀 기울이는 태도에 대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Q: 당신의 음악을 듣다 보면, 음과 음 사이에도 무언가가 일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마치 음악이 울리는 소리만이 아니라, 그 사이에 놓인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처럼요. 이것은 의도하신 건가요?
토마스 알렉산더 콜베:
네, 맞습니다. 제게 음악은 들리는 부분뿐만 아니라 들리지 않는 부분으로도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불필요한 소리를 비우고, 절제를 통해 그 틈새를 드러냅니다. 이는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듣는 이의 내면에 울림을 남기기 위한 배려입니다. 그 ‘빈 공간’은 단순한 쉼표가 아니라 전환이며, 기억이고, 때로는 거울이 됩니다.
Q: 주로 일본에 거주하시고, 베를린에도 거처가 있는데요. 이 두 지역을 오가며 생활하는 것이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나요?
콜베:
일본에서는 외적인 규율이 아닌, 내면의 태도로서 ‘집중’을 배웠습니다. 무엇을 하든 온전한 존재로 임하는 태도죠. 그 감각은 자연스럽게 제 음악에도 스며듭니다. 반면 베를린은 생각을 구체화하는 공간입니다. 보다 직접적이고 구조적이죠. 일본에서는 긴 호흡으로 사유하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Q: 새 싱글 제목이기도 한 “Memory Field(기억의 장)”이라는 용어를 개념처럼 사용하시는데요. 이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콜베:
“Memory Field”는 소리를 통해 열고자 하는 내면의 공간입니다. 향수나 그리움을 위한 곳이 아니라, 경험이 가만히 쌓여 있는 장(場)이죠. 많은 음악적 체험은 몸에 저장된 기억 위에 서 있다고 믿습니다. 특정 음색이나 화성의 흐름이 단순히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넘어, 몸이 무언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의식이 못 미치는 기억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지점입니다.
Q: 당신의 대부분 곡이 고요하고 명상적인데, 전형적인 ‘칠(chill)’ 음악처럼 배경에 흘러들어가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존재감을 유지하면서도 라운지 음악 같은 편안함으로 흐르지 않죠. 이런 ‘비칠’(non-chill) 방향성은 의도된 것인가요?
콜베:
저는 장르적 한계에서 벗어나는 데 특별한 반항심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런 틀로 사고하는 방식이 제게 맞지 않을 뿐이죠. 대부분의 장르는 공통된 문화적 부호(code)를 전제로 하지만, 저는 그 부호가 생기기 이전 또는 부호를 벗겨냈을 때 남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또한, 곡 안에서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필요하다면 구조 자체를 제거하기도 합니다.
Q: 트랙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시나요? 일정한 루틴이 있나요,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인가요?
콜베:
저는 비트나 훅(hook)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 방향은 제게 익숙하지 않아요. 보통 아무 소리도 듣지 않는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고요 속에 아이디어를 사유하죠.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첫 작업은 ‘소리 테스트’에 가깝습니다. 어떤 소재가 내면의 움직임과 연결되는지 귀 기울이는 과정입니다. 그 후에는 매우 체계적이고 분석적으로 작업하지만, 시작은 언제나 형태가 없는 상태입니다.
Q: 음악을 넘어 ‘소리(sound)’는 당신에게 무엇인가요?
콜베:
소리는 제게 ‘존재의 방식’입니다. 단순히 공간에 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각인되는 것이죠. 소리는 감정보다 기억이나 신체적 지식에 더 깊게 닿는다고 느낍니다.
Q: ‘초월(transcendence)’을 말할 때, 에소테릭한 요소는 필요 없다고 하셨는데, 그 의미를 설명해 주시겠어요?
콜베:
저는 영적 실천과 에소테릭한 주장 사이를 분명히 구분합니다. 제가 실천하는 불교는 관찰과 명료함, 환상을 줄이려는 태도를 기반으로 합니다. 반면 에소테릭은 암시와 투영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죠. 제 음악에는 의미를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듣는 이 안에서 개별적으로 의미가 일어나는 공간을 열고 싶습니다.
Q: 곡을 쓸 때 리스너를 염두에 두시나요, 아니면 먼저 자신을 위해 작곡하시나요?
콜베:
타깃 청중 같은 개념은 떠올리지 않지만,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느낌은 언제나 의식합니다. 설명 없이도 함께 존재하는 상태를 공유한다고 상상하며 작곡합니다. 상대는 군중이 아니라, 한 사람의 고요한 귀입니다.
Q: 클럽 오브 톤(Club of Tone)이나 TV 드라마 「19/20」 같은 협업 작업을 많이 하시는데요. 솔로 작업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콜베:
협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차이(difference)’가 온전히 유지된다는 점입니다. 상대를 통합하거나 제 쪽으로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서로 사이에 틈을 열어두어, 그 사이에서 제3의 무언가가 나타나도록 합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모두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Q: 곡 제목은 종종 시적이고 문학적인데요—Starboy (The Journey Part One), Memory Field, Silent Distance 등. 이런 제목은 어떻게 탄생하나요?
콜베:
저는 그것들을 ‘듣습니다.’ 언어가 아니라 리듬이나 소리의 느낌, 때로는 영상처럼 떠오르는 것이죠. 제목은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곡을 어떤 방향에서 들어야 할지 알려주는 ‘단서’입니다. 저는 기능적인 제목을 꺼립니다. 음악은 기능이 아니라 ‘몸짓’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음악이 끝난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소리, 사유, 아니면 영향력?
콜베:
아마도 더 이상 ‘소리(sound)’라 부를 수 없을 만큼 모호한 것이 남을 것입니다. 자국(trace), 울림(echo). 잔향이 아니라, 듣는 이 안에서 계속되는 움직임 같은 것이죠. 그 무엇도 누구의 것이 아니라, 고요히 머물러주길 바랍니다.
이 인터뷰는 2025년 5월에 진행되었습니다.